성격 진단 '로르샤흐 테스트' 10장 모두 공개돼 논란
'로르샤흐(Rorschach) 테스트'는 성격 분석에 널리 사용된다. 대칭 모양의 잉크 얼룩(inkblot)들을 보여줬을 때 측정 대상자가 보이는 총체적인 반응을 분석해 성격을 판단하는 테스트다. 그런데 로르샤흐 테스트에 쓰는 잉크 얼룩 1세트(10장) 모두가 최근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ikipedia)'에 그대로 공개돼 심리학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29일 보도했다. 잉크 얼룩별로 사람들이 가장 흔히 응답하는 것까지 올라와 있다.
심리학자들은 잉크 얼룩들이 공개되면 테스트가 무의미해진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1번 잉크 얼룩'을 볼 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박쥐·나비·나방을 생각한다고 위키피디아는 설명한다. 이 정보를 접하고 테스트를 받는 이는 자연히 위키피디아에 거론된 동물들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추상적 그림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반응하느냐'로 성격을 판단하는 로르샤흐 테스트에서 이런 사전(事前) 정보는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로르샤흐와 투영적 방법론' 국제협회 회장을 맡은 브루스 스미스(Smith) 박사는 "테스트 자료가 널리 알려질수록 테스트의 의미가 없어진다"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심리분석 훈련을 받지 않은 비(非)전문가가 함부로 로르샤흐 테스트에 따른 진단을 내리는 것에 대한 우려도 크다. 스티브 브레클러(Breckler) 미국 심리학협회 회장은 "잉크 얼룩들이 공개돼 아무나 테스트할 수 있게 돼서는 안 된다"며 "심리학자 윤리강령은 테스트 자료에 대한 보안을 지킬 것을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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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르샤흐 테스트의 1번 그림. 이 그림에서 뭐가 떠오르시나요?
일부 심리학자들은 잉크 얼룩들이 위키피디아에 공개됐다 해도 테스트는 여전히 유용하다고 본다. '무엇처럼 보이는가'만 따지는 게 아니라, 얼룩의 색깔이 얼마나 짙어 보이는가, 얼룩이 얼마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가 등등을 총체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또 어차피 인터넷을 뒤지면 여기저기 게재된 얼룩 10장을 다 구할 수 있고, 또 새로운 잉크 얼룩 모양을 만들어 테스트에 사용하면 된다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1921년 스위스 심리학자 헤르만 로르샤흐(Rorschach)가 얼룩 10장을 개발한 이후, 이에 대한 수많은 임상 테스트 결과와 수만 건의 논문이 축적돼 오늘날의 체계적인 분석 시스템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새로운 얼룩 모양이 만들어지면, 축적된 기존 연구 결과를 이용할 수 없게 되고, 다시 처음부터 임상 결과를 쌓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로르샤흐 책에 대한 판권(版權)을 보유한 독일의 호그레페 후버 출판사는 위키피디아를 관리하는 비영리 재단인 위키미디어(Wikimedia)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 출판사는 잉크 얼룩 10장과 함께, 분석 방법을 담은 자료들을 전 세계에 판매해 왔다. 그러나 위키미디어측은 로르샤흐 얼룩이 만들어진 지 88년이나 지나, 스위스에서의 저작권 기한이 종료됐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