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규섭 자살예방협회장
"자살은 전염력 매우 강해… 부모·형제·친구 등에 대한 치유와 보살핌이 필요해"
자살에도 가족력(歷)이 있는 걸까. 고(故) 최진실씨에 이어 동생인 최진영(39)씨도 지난 29일 자살로 생을 마감한 데 대해 하규섭 한국자살예방협회장(서울대 신경정신과 교수)은 "자살은 전염력이 매우 강하다"고 말했다. 미국 자살연구협회에 따르면(2006년) "한 사람의 자살이 가족·친지·동료 등 가까운 사람들 6명에게 정신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대만의 연구기관 아카데미아 시니카(Academia Sinica)의 자살연구 결과(2000년)에 따르면 가족 중에 자살한 사람이 있는 경우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자살할 확률이 4.2배 높았고, 최근 1년간 주변인·건강·포부 등의 상실 경험이 있는 경우는 9.8배 높았다. 하 회장은 "자살 후 남게 되는 가족 등 주변인에 대한 치유와 보살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 ▲ 하규섭 한국자살예방협회장은“자살은 가족·친지·동료 등 가까운 사람들 6명에게 정신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며 가족 등 주변인에 대한 치유도 필요하다고 했다. /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인간이 받는 정신적 충격(스트레스) 중에서 1위가 배우자의 죽음이고 2위가 부모·자식·형제 등 가족의 죽음이다. 자살자의 가족들은 일차적으로 '나 때문에 죽었나'는 생각을 하게 되고, '내가 말릴 수 있는데 못했다' '자살의 징조를 눈치 채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주변인 6명에게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외국 연구에서 자살은 부모·형제·친구 등 평균적으로 6명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것도 누군가의 자살로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주변인을 아주 보수적으로(가능한 한 적게) 센 것이다.
최진실·최진영씨 같은 유명인의 경우는 그 전염력이 더 강하다. 우리나라에서 하루 평균 자살자는 35명꼴로 한 달에 1000여명, 연간 1만2800여명이 자살한다. 그러나 최진실씨가 자살한 달(2008년 10월)에는 자살자가 1700여명에 달했다. 유명인 자살 후 모방 자살이 늘어나는 것,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누구나 다 자살에 전염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렇다. 자살이라는 것 자체가 '병(病)'이다. 특히 자살이라는 바이러스에 약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자살한 사람들은 감정·불안·충동을 조절하는 '세로토닌' 수치가 현저히 낮았다는 연구결과가 있고, 자살로 사망한 사람의 60~70%는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자살이 병이라면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자살의 심각성에 비해 누가, 왜, 어떤 이유로 자살하는지에 대한 연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자살률 1위, 자살증가율도 1위다. 5000만 인구 중 연간 1만여명이 자살로 사망한다면 10년이면 12만명으로 400분의 1의 확률이다."
―최소한 자살자와 가까운 6명에 대해서도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이다. 지역 정신보건센터에서 자살자 유가족이나 자살 시도자 가족들에 대해 상담과 치료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죽으면 다 덮자'고 하는 문화가 있다. 때문에 남겨진 사람에 대해 접근하는 것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자살예방협회는 왜 언론이 유명인 자살을 크게 보도하지 말라고 하는가.
"언론 보도를 통해 자살자를 이해하고 동정하는 여론이 퍼지는 것이 문제다. 이번 최진영씨 자살에도 보니 '견디다 못해 자살했다' '오죽하면 자살했겠나' 등의 표현들이 나오더라. 힘들다고 모든 사람들이 자살하는 것은 아니다. 자살이라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잘못된 선택이라는 메시지가 전달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