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 소방차 싸이렌이 시끄럽게 울어댔다. 집 주변 같은데 어디서 불이 난 걸까?
궁금한 채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다음 날 그 가족을 잘 알고 있는 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오래
전 그 집의 아이를 가르쳤고 근래들어 그 아이를 자주 만나왔었다. 나 역시 한 달 전 공원에서 얼핏 보
았던 아이였다. 단 한 번 스치듯 만났지만 눈매가 깊고 어두워 오래도록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고 3인데 많이 힘들어 한다고 했다. 만날 때마다 죽고 싶다는 말을 한다고 했다. 7살 이후로 자신이 어
떻게 살아왔는지 낱낱이 얘기했고 이제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날 밤 아이 아빠가
집에 불을 지른 것이다.
한 가정이 이렇게 파괴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3년 전 여름, 피서를 갔던 그들은 계곡에서 한참 물놀이 중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바윗돌 하나가 굴
러와 그 아이 엄마의 옆구리를 쳤고 중상을 입은 그녀는 병원에 입원을 한다. 얼결에 일어난 사고였지
만 그 사고는 또 다른 불행을 가져왔다. 엄마의 병원에 병문안을 왔던 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과자를 사러 간다며 두 아이가 손 잡고 나간 지 10분도 안 된 시간이었다. 동생의 손을 놓은
누나가 먼저 길을 건넜고 누나를 따라 건너려던 작은 아이를 차가 덮친 것이다.
그때부터였다. 엄마는 딸에게 가혹했다. 사소한 일에도 죽지 않을 만큼 때렸고 어딜 내보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근근이 학원과 학교만 오갈 정도였다. 집착인지 사랑인지 모를 엄마의 행각은 13년 동안 이어
졌고 지친 아이는 죽음만이 자신을 구원해줄 거라고 믿었다. 부부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을 잃은 다
음 그녀는 종교에 심취해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지만 가정으로 돌아오면 사람이 달라졌다.
그날도 부부싸움이 있었고 잠시 밖으로 나간 남편이 시너통을 들고와 집안에 뿌린 다음 불을 붙인 것이
다. 13년이었다. 그 긴 고통의 세월동안 그들 가족 중 누구도 상처를 치유받지 못했다. 상처를 묵힌 그들
은 날마다 서로를 할퀴었고 가정 방화라는 무서운 시도로 끝이 났다. 순식간에 번진 불길로 중화상을 입
은 그들 가족은 무거운 침묵에 들어갔고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 있는 그들의 보금자리만이 그날의 참상을
말해주고 있다.
만일 그들이 자신들의 상처를 적극적으로 치료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래도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아이를 잃은 엄마는 동생의 손을 놓은 누나에게 날마다 책임을 묻고 싶었을 것이고 일곱 살 어린 딸은 엄
마의 혹독한 문책을 감내하며 수없이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하루도 편할 날 없는 가정에서 남편은
남편 대로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는가. 각자가 짊어진 상처가 무거운데 누가 누구를 위로할 수 있었겠는가.
13년이란 긴 시간, 그들의 상처는 썩어 문드러져 종국엔 '모두 죽자'로 결말이 났던 것이다.
자살률 세계 1위, 전 국민의 5%가 우울증환자인데도 정작 적극적으로 상담을 받거나 치료를 받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는 정신과적 치료를 받는 것을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정신이 아픈 것도 아
픈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미온적이거나 거부감을 느낄 필요가 없을 텐데도 말이다.
가족을 잃거나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면 망설이지 말고 상담을 받거나 치료를 받아야 한다. 상처는 묵혀
둔다고 그냥 낫거나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 정신과적 상처 치료 기관
심리상담센터, 신경정신과, 아동청소년상담센터, 코칭센터, 청소년 센터 등이 있다.
* 그림 : 하삼두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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