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가 너무 커!"
밤길을 걷는데 남편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다투거나 서로 언짢은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으니.)
"....."
남편의 말은 '무지몽매한 여자처럼 보여서 함께 가는 내가 창피해.'라는 말로 들렸다.
왜 그런 거 있잖은가. 말에서 묻어나는 느낌보다 표정에서 흘러나오는 느낌.
황망함인지 민망함인지 모를 묘한 감정이 일었지만 반박도, 반격도 못하고 주춤했다.
남편은 내 말이 자기 말고 다른 사람 귀에도 들렸다면 쓸데없이 목소리가 큰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 목소리가 뭐가 커?"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소극적인 응대를 했다.
"커!"
아직까지 살아오면서 목소리 크단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이 남자가 쓸데없이 과민해서 그러는 걸
거야, 라는 식으로 적당히 합리화 했지만 목구멍에 가시가 낀 것처럼 걸렸다.
얼마 뒤, 그 소리를 또 들었다. 함께 밥을 사 먹고 오는 중이었다.
"목소리 좀 줄여."
이젠 대놓고 얼굴이 찡그려진다.
"아니, 내 목소리가 뭐가 크다는 거야?"
이번엔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해야겠구나 싶어 적극적으로 응대했다.
"커!"
길거리에서 고함질러가며 남편 닥달하는 여자들을 볼 때마다 저러고도 만수무강에 지장 없을까, 은근
히 걱정도 되고 교양없이 저게 뭔 짓인가 하며 흉봤던 사람인데 내 남편이 나를 그런 여자 취급하는 것
같아 상당히 기분이 나빠졌다.
그래, 당신 같은 남자는 정말 무식하고 목소리만 큰 여자하고 살아봐야 돼. 나더러 목소리가 크다고?
웃겨. 다른 남자들은 사근사근하고 교양있다며 나랑 같이 사는 남자를 얼마나 부러워하는 줄 알어?
(좀 보탰다. 내가 남편한테 써 먹는 수법이다.)
길거리에서 투닥거릴 수도 없고 온 몸을 냉기로 샤워한 다음 속으로만 꿍얼꿍얼.
그런데 남편에게 두 번씩이나 목소리 크단 얘기를 듣고 보니 말하는 것에 대해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당시에는 남편이 없는 얘기를 지어내 나를 모함한 것처럼 기분이 상했지만 말할 때마다 나를 살펴보니
목소리가 커지긴 커졌구나 싶었다.
큰소리를 얼마나 싫어했던 사람인가. 침 튀겨가며 말 크게 하는 사람, 사람 많은 데서 마치 세상에 자기
혼자만 있는 양 큰소리 떵떵 치는 사람, 걸핏하면 큰소리내며 싸우자고 덤비는 사람이 싫었었다.
그뿐이 아니다. 텔레비전 볼륨이 큰 것도 못 견뎌했고 사람이 와글거리는 백화점이나 마트에 다녀오면
병이 날 정도로 소란스러운 걸 싫어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그런 사람의 반열에 들었단 말인가.
살다보니 낯이 두꺼워진 것일까? 아니면 염치를 아예 버려두고 사는 것은 아닌가. 이런 저런 상념이
교차해 혼자 무안해졌다.
사실 그렇지 않는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늘 안중에 둔다면 큰 소리로 떠들거나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뱉지는 않을 것이다. 또 나직나직하게 대화하다 보면 싸울 일도 없다. 언성이 높아졌다는 말도
대화 중에 어느 한 쪽이 발끈하여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다. 기분이 좋을 때야 상대방
의 큰소리도 거슬리지 않지만 마음이 상하면 큰소리 내는 것 자체를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목소리 크다는 말에 심기가 뒤틀렸지만 끝내는 나의 말하는 품새를 돌아보게 되었다.
남편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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