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 심리학 ◈

영화 "왕의 남자" -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우야씨의 일상 2008. 1. 25. 16:54

왕의 남자(King And The Clown, 2005)

* 감독 : 이준익
* 출연 : 감우성, 정진영, 강성연, 이준기, 장항선
* 기타 : 2005-12-29 개봉 / 119분 / 드라마 / 15세 관람가


어느 학자가 라디오에서 이야기했다. 역사를 모르는 사람과는 대화하기
싫다고.
제 사는 나라 역사 앎은 국민의 근본임을 강조하는 말이었으리라.
역사를 잘 모르는 내가 역사무비에 대해 글을 쓰려니 적지 않은 부담이
되지만 영화는 허구이며 이미 감독의 의도대로 창작과 편집의 두 날로
본 떠졌으니 나 또한, 상담자의 앵글로 내 눈에 보이는 만큼 보고자
한다.


<< PTSD환자 연산군 >>

연산군은 양육자와 애착관계를 가질 수 없었다. 어린 아들이 어미를
찾는 건 당연 본능임에도 불구하고 상쇄되었고
‘어마마마가 보고 싶다’고 울 때마다 부친은 우는 연산을 안기보다
‘못난 놈’으로 질책했다. 게다가 어린 나이에 생모가 조모와 후궁들에
의해 고통스럽게 살해당하는 엄청난 외상을 겪는다.

아동기에 외상을 겪으면 사건에 대한 왜곡이 더욱 심할 뿐더러
그 영향력은 자신을 파괴할 만큼 엄청난 강도로 평생을 짊어지게 된다.
역사학자들은 왕으로써 연산을 평가하겠지만
상담자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 그는 왕이기 전에
심각한 외상후스트레스 환자인 것이다.

PTSD는 충분한 사회적 지지를 받으면 회복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땐 더 악화되고 고립감, 정서적 마비를 경험하게 된다.

연산에게는 왕의 역할과 의무만 있을 뿐 슬프게도 자신을 있는그대로
안고 이해해 줄 사람은 궁궐 천지에 아무도 없다.

신하들은 또 어떠한가. 매사를 선왕과 비교하면서 못마땅해하고 연산의
불안정한 자아에 열등감을 자극한다. ‘선왕은 안 그랬다. 달랐다’
연산은 선왕이란 언어에서 자극일반화가 일어나고 공포와 분노반응을
보이며 한번 일어난 그 공포는 쉽사리 사라지지 못한다.

희생자 자의식의 방어수단이기도 한 <전지전능감>을 능히 부릴 듯한
왕이라는 타이틀은 허울만 있을 뿐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처선아, 내가 왕이 맞느냐? 선왕이 만든 법도에 매여 사는 내가 정녕
왕이 맞단 말이냐!!` 그 괴리감은 엄청난 적개심과 분노로 밀려온다.


<< 치료사 공길 >>

공길! 여성보다 더 강한 여성성을 지니고 있다. 불쌍하고 안 된 사람에
대한 동정심과 연민, 부드러움과 모성이 있다.
동료 장생과 함께 궁과 따뜻한 음식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무작정 입궐
했으나, 연산은 권위적이지 않고 부드러운 공길을 ‘놀~자’며 방으로
이끈다.

왕의 방에서의 놀이는 예사 놀이가 아니다.
그것은 놀이가 아닌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연산자신의 외상사건임을
깨닫는다.

연산에게 공길은 어미나 누이처럼 고통스러운 기억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다. 동정심과 연민이 강한 공길은
연산의 내적치료를 돕기로 마음먹는다. 이미 둘 사이에는 라포가 형성되
었으므로 지지적 환경을 맺으며 공감관계로 발전한다.

인간적 자질이 풍부한 공길이 전문적 자질 또한 갖추었더라면 연산은
내적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으리라.


<< 그의 드라마 굿판 >>

어릴 때부터 연산을 모신 신하 처선은 이런 연산이 안타깝다.
상처와 질병으로 화병을 치유해서 제대로 왕 구실하도록
도와주고 싶다. 치료를 하고자 각본 있는 굿판을 벌인다.

* 1번째 굿 - 연산과 그의 애첩 녹수 풍자 놀이판

이드를 숨긴 수퍼에고의 늪에서 질식할 것 같았던 연산은
공개적인 성의 묘사와 풍자에서 묵은 체증이 뻥 뚫리는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 2번째 굿 - 탐관오리 비리 풍자놀이판

중신들의 비리를 까발린 풍자에 연산은 신나고 즐겁다.
그동안 억누르고 숨통을 죄던 신하들의 비리를 노출하는 굿에서
희열과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웃지않는 중신 한 명을 탐관오리라는
명목으로 형벌을 내린다.

PTSD환자 연산은 배반감이나 속는 느낌 혹은 놀림당하거나 조종당한다는
느낌이 들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분노가 폭발되는 것이다.

* 3번째 굿 - 후궁에게 사약을 내리는 경극

마치 패왕별희를 연상시키는 듯한 경극에서 연산은 생모 폐비윤씨가
사약을 먹고 죽는 과거의 외상이 재현된다. 분노와 적개심을 주체 못하고
원수인 선왕의 여자들을 직접 칼로 쳐서 죽게 한다.

PTSD는 정체감을 분열시키고 파편화시켜 때로는 자신을 살인자와 때로는
희생자와 동일시하며 양극단적인 태도를 갖는다.


<< 왜 드라마는 실패했는가 >>

안전한 장소에서 내담자가 준비된 만큼 재경험하여
민감도와 공포를 서서히 줄여가야 하는데 아무런 심리적 준비 없이
위험에 대한 사전예고, 대비연습도 없이 현실의 인물을 앞에 두고
시행되었다는 것이 엄청난 실수다.
준비되지 않은 상처와의 직면은 되돌릴 수 없는 비극을 초래할 수 있음
을 신하처선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 연산을 치료한다면 >>

이미 시간이 훌쩍 흘렀으나 지금이라도 치료를 받는다면 결코 늦지 않았
음을 설득시켜야 한다. 그 증상들이 지극히 정상적임을 이해시킨다.
믿을 수 있는 안전한 관계를 맺은 후 트라우마에 대한 감정이나 생각들을
생생하게 이야기하고 정화시킨다.
어린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극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
하고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라고 자신을 괴롭히는 귀인양식을 변화
시켜야 한다.
그래서 고통스런 기억과 정서를 극복하고 자신을 <희생자>에서 귀한
<생존자>로 여기게 해야 한다.

훌륭한 치료사를 만났더라면 연산은 극악무도한 몹쓸왕에서 비범하고
선행을 베푸는 왕이 될 수도 있었으리라.
아니 그 이전에 행복한 여생을 사는 한 인간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가해자도 가해자 이전의 피해자다.
인간 연산은 상처가 많은 참 불쌍한 내담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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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생: “어느 잡놈이 그놈 마음을 훔쳐 가는 걸 못 보고, 그 마음이
멀어져 가는 걸 못 보고...”
* 장생: “난 다시 태어나면 광대로 태어 날 것이다”
* 공길: “나야, 다시 태어나도 광대, 광대지”

 

출처: 카운피아 시네마치료

        칼럼지기:김은지(pink0227) >>pink022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