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이 따라다닐 수도 없고..”
리모콘을 들어 TV를 끄는 별이 엄마의 얼굴이 어둡습니다.
오늘 뉴스에도 흉흉한 소식들이 가득합니다.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만큼 무서운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네요.
한번 본 적도 없는 남의 집 아이의 일에도 이리도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핑~ 도는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우리 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이야기에 별이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마음 같아서는 한 순간도 아이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지만, 사실상 이도 불가능합니다.
별이 아빠 혼자 벌어서는 세 식구의 한 달 생활이 빠듯해 별이 엄마도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유치원에서 돌아와서 혼자 빈 집에 있을 별이만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지만 마음만큼 결정이 쉽지 않습니다.
다들 이런 마음인지, 옆집 철수네는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하고, 맞벌이를 하고 있는 윗집 영희 엄마는 학교를 마치고 가는 학원을 두 군데 더 늘렸다고 합니다.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잠들어 있는 별이의 모습은 천사같이 평온합니다.
“옆집 아저씨도, 남자 선생님들도 함부로 믿으면 안 돼!”
“왜?”
“안된다면 안되는 거야. 별이, 엄마 말 알겠지?”
별이의 유치원 친구인 민수. 그리고 별이를 많이 예뻐하는 민수 아빠.
별이는 민수 아빠가 줬다는 사탕을 입에 넣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엄마를 바라봅니다.
늘 고마운 이웃이지만 어제 TV에서 본 동대문성폭행사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제는 이웃도, 학교 선생님도 믿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마냥 어리기만 한 우리 별이,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호신술이라도 가르쳐야 할까?”
“저 어린 애가 호신술을 하면 그게 먹히기나 해?”
“그렇다고 가만 내버려둘 순 없잖아.”
“별이가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별이 아빠는 보고 있던 신문을 내려놓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옆에 앉은 별이 엄마도 덩달아 한숨을 내쉽니다.
별이가 상황을 판단할 줄 안다면, 어떤 게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수 있다면,
아니, 적어도 작은 조짐이라도 엄마에게 솔직하게 모두 얘기해준다면 이리도 불안하지는 않을텐데-
마주 앉은 별이 아빠, 엄마의 한숨 소리는 깊어져만 갑니다.
“안돼요, 싫어요, 하지마세요!”
아이의 손을 잡아당기는 어른의 모습이 TV에 나오자,
갑자기 소리치는 별이의 다부진 목소리에 별이 아빠와 엄마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습니다.
“별이야, 그런 거 어디서 배웠어?”
“유치원에서 오늘 권리 선생님이 가르쳐줬어”
“권리 선생님?”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부모님의 시선에 우쭐해 진 별이가 조막만한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킵니다.
“여기랑 여기는 내 몸에서 소중하고 중요한 곳이라서 다른 사람은 만지면 안된다고 그랬어.
그리고~ 병만이처럼 다른 아줌마가 게임기 준다고 같이 가지고 해도 따라가면 안 돼.
하나, 둘, 셋⋯
이렇게 다섯 발자국 떨어져서 아줌마한테 길 가르쳐 줘야 되는 거야”
최대한 크게 다섯 발자국을 세며 멀리 떨어져 서는 별이의 모습에
별이 엄마의 입가에 슬며시 웃음이 그려집니다.
“우리 별이, 권리 선생님이 또 어떤 걸 가르쳐 주셨어?”
“이 세상에 하나뿐인 나~ 나의 몸은 내가 지킬래♪
사랑을 주세요~ 행복을 주세요~ 나의 몸은 너무 소중해.
안돼 안돼~ 빨리 뛰어~ 1577-1391로~
사랑을 주세요~ 행복을 주세요~ 나의 몸은 너무 소중해”
율동까지 함께 하며 열심히 노래 부르는 별이의 모습에 아빠와 엄마가 서로 마주보며 살짝 눈웃음을 교환합니다.
한순간에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어떤 상황이 자신에게 위험한지는 아는구나, 그럴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는 배웠구나.'
라는 작은 안도감에 별이 엄마의 눈가가 빨갛게 젖어옵니다.
사랑과 행복을 다 주어도 부족한 내 딸 별이.
오늘 별이 엄마는 소중한 딸을 지킬 수 있는 멋진 방법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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