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 심리학 ◈

충분히 좋은 부모란? (1)

우야씨의 일상 2008. 12. 9. 10:15

최근 미국 사회에서 유행처럼 던져지는 질문은 “아무리 많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은?”, 그 답은 “잘 키운 자녀”이다. 이를 반영하여 2000년 1월에 월스트리트 저널도 2개 지면을 할애해 “우리의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부모가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을 다각도로 조명하면서 아동의 문제행동에 대한 대책을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미국의 투자은행 메릴린치(Merrilrinch)가 정신건강 전문가를 고용하여 주요 고객 자녀들을 대상으로 일대일 상담서비스를 하겠다고 나선 것도 이런 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부모가 자녀 문제로 상담실을 찾아 올 때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유형의 부모-자녀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첫 번째, 아이의 발달수준이 자신의 연령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러있는 가족이다. 즉, 7살 아이가 4살짜리 아이의 행동수준을 나타내어, 그 아이의 부모들이 아이를 대할 때 7살 아이로 대하지 않고 4살 아이와 사는 것처럼 위장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 상담가는 이 가족에게 3년 동안의 기간에 감정적인 고통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즉 상담가는 ‘무엇이 이 가족에게 어려움을 주고 있는가?’, ‘그 어려움이 가족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 이러한 일이 발생하였는가?’를 알아내어서, 아이가 그 일로 인해 생긴 고통을 표현하도록 한 다음 그 고통을 아이가 대면할 수 있게 도와준다.

두 번째, 7살 아이가 14살짜리 아이와 같이 행동하여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워 보이는 과잉발달(허위성장)을 나타내는 경우이다. 이런 가족은 부모-자녀 관계가 동일 선상에 있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와 의논할 수 없는 가족 문제를 의논하게 된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녀에게 부부불화나 이혼문제 같은 것을 의논한다. 이런 가족의 경우 부모들은 현재 그 가족이 어떠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아이를 통해 표현하고, 아이에게 문제를 그대로 노출시키게 된다. 따라서 아이들은 정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또한 가족이 해체될 위기나, 이혼, 그리고 부부의 정서적 문제 등이 발생하였을 경우에 아이는 자신이 성장하여 자신의 부모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부모 역시 자녀가 하루 빨리 성장하여 의지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바람을 자녀에게 행동으로 표현한다.

상담실에 의뢰되어 오는 아이의 문제가 무엇이든지간에, 위의 두 가지 유형에 속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아이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들여다보면 부모에게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부모들은 이러한 문제를 접하게 되면 자녀에게 많은 것을 주기 위하여 노력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부모들의 노력이 옳은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전문가로서 의문점을 가질 때가 많다. 우리 부모들은 진정 자녀에게 줄 것을 주고 있는지, 그것의 방향이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려는 것인지, 부모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인지, 남에게 자식을 잘 키웠다는 것을 인정받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진정 자녀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다른 부모들이 하는 대로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에게 많은 것을 주고 싶고 실제로 주고 있지만, 우리 부모가 자녀에게 정말 줄 것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것을 물어올 때마다 “내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생각하기 보다는 나는 어떠한 부모가 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세요.”라고 답하면서 오늘도 내 자신의 사는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무엇보다 부모 되기가 어려운 점은 우리 부모 자체가 자녀에게 움직이는 교과서(a moving textbook)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자신의 사는 모습 그대로를 모방하여 자신의 삶에 기초를 이룬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으로 알고 있겠지만 절대 나는 이런 점에서 우리 부모를 닮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살다보면 우리가 사는 모습 속에서 우리 부모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중요한 심리적 과정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받아들임의 과정 (incorporation)이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자신들의 마음속에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슴속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답습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과정은 생의 초기부터 시작되지만 6살내지 7살 때에는 정착된 상태로 되어서 아이의 심리적인 형태가 된다. 이 과정은 7세 이후에도 계속되어 한 평생 이루어지지만 7살 정도에서는 그런 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 확고한 메카니즘이 정착되어야 하는데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마음속에 받아들일 수 있는 부모의 모습이 정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아이가 받아들임의 과정을 통해 부모를 사랑의 실체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부모의 모습을 닮을 수 있는 모습을 지니는 것이다. 부모가 좋은 부부관계와 인간관계를 맺고, 주위 사람들을 항상 격려하고 지지해주는 지도력을 가지며, 가치 있고 중요한 일에 책임성을 가지며, 어려운 일이 생길지라도 그 문제에 당착되어 고민하기보다는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문제해결력을 일상생활 속에서 보여주게 되면 아이들은 부모의 그런 모습을 그대로 닮으면서 한 사람의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우리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이고 ‘충분히 좋은 부모’인 것이다. 충분히 좋은 부모는 또한 자녀들의 생각과 느낌에 공감해주고, 자녀가 부모를 필요로 하는 상황을 민감하게 파악하여 즉각적이고도 적절하게 반응하며, 자녀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강압, 비난, 위협, 조건제시 등과 같이 부정적인 방법이 아니라 타협, 설득, 지도와 같은 건설적인 방법을 통해서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부모이다.

                                                                                                            '열린부모교육학회'
                                                                              김영희 (충북대학교 아동복지학과 교수)